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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은 아침 차를 몰아 순천으로 향한다. 1970년 대한민국 1번 고속도로인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될 당시만 해도 산악지형이 많은 불리함 때문에 엄청난 인력과 장비가 투입되어 어렵사리 지금의 국토 대동맥을 완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세월이 무려 30년도 훨씬 지나버린 오늘의 고속도로 건설공법은 놀라움의 극치를 내달린다. 뱀이 숲길을 빠져나가듯 산허리를 꼬불랑 거리며 돌아다니던 길들은 쭉쭉 뻗은 직선으로 바뀌었고, 계곡과 계곡사이는 높이 수백 미터의 다리를 놓아 하늘을 날듯 지나다니며, 큰 산이 있는 곳이면 광폭 3차로 터널이 개통되어 운전하기 여간 수월한 게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경부고속도로 비룡분기점에서 시작되는 대진고속도로는 남해 고속도로로 접어드는 서진주 까지는 그 거리가 무려 170여 킬로미터지만 체감되는 소요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남해고속도로 하동을 지나니 전라도 땅 광양이다. 우리나라 굴지의 제철소가 들어선 도시라 그런지 작지만 활력이 있고, 여기저기 솟아오른 공장의 굴뚝들이 공업화 도시임을 잘 말해주고 있다. 커다란 컨테이너와 탱크로리들이 줄지어 국도를 내달리며 분주히 제각각 맡은 물건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광양과 인접한 순천은 여수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수많은 섬들이 바다를 수놓은 남해안 다도해의 중심에 위치한 여수반도. 그 여수반도의 들머리에 위치한 순천은 주암호와 상사호 두 개의 커다란 호수를 가지고 있는 곳으로 조선시대의 삶을 그대로 보존해 놓고 실제로도 그 안에서 마을 사람들이 기거하는 민속촌인 ‘낙안읍성’을 비롯하여 조계산의 선암사와 송광사 등 볼거리가 풍성하기 때문에 여러 날 묵어가며 꼼꼼히 살펴보는 여행이 제격인 곳이다. 근래에는 순천시에서 운영하는 ‘시티투어’가 각광을 받고 있는데, 버스를 타고 주요 관광지를 이동하며 안내원의 상세한 설명을 통해 순천을 익히는 관광으로 짧은 시간 동안 순천의 이모저모를 둘러볼 수 있는 좋은 코스다.






시내를 빠져나와 순천만으로 방향을 잡았다. 순천만은 고흥반도와 여수반도 사이의 만을 일컫는데, 그 아래에 연이은 여자만과 더불어 생태의 보고이자 철새들의 낙원이기도 하다. 순천만의 북쪽으론 갈대숲이 아름다운 대대포구가 자리 잡고 있고, 그 동쪽엔 순천만의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하기 좋은 와온해변과 용산전망대가 있다. 서쪽으로는 화포해변이 있는데 칠면초와 넓은 개펄이 주변을 이루고 있어 일출뿐만 아니라 일몰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순천 시내를 가로지르는 동천과 이사천이 만나 남해의 바닷물로 흡인되는 곳 대대포구. 순천만 생태공원을 지나 포구로 들어서니 나무데크가 깔린 갈대숲길이 인상적이다. 예전 순천만의 갈대는 이 지방 사람들의 중요한 수입원 중에 하나였다. 갈대를 꺾어 빗자루와 김발을 만들거나 땔감으로 사용을 했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그런 갈대 제품을 찾는 사람이 줄어 순천만에서도 갈대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은 사라지게 되었다. 더불어 15만평 정도였던 갈대숲은 무려 70만평으로 그 숫자가 불어나 우리나라 최대의 갈대군락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흑두루미의 서식처이기도 한 대대포구 갈대숲은 와온, 화포해변의 칠면초와 더불어 순천만을 더욱 아름답게 수식해주는 상징물이기도 한데 바람이 불어오면 서걱이는 갈대 소리가 합창을 하며 흩날리는 머릿결처럼 갈대들은 아름다운 율동이 펼쳐진다. 황금빛 저녁 햇살을 받아 파도를 이루는 갈대들의 향연은 조용히 눈을 감으니 클라리넷 연주처럼 감미롭다. 많은 바다 생물들이 살아 숨 쉬는 삶의 원천이기도한 순천만 개펄의 두터운 속살을 속속들이 보기 위해선 뭍에서 그냥 쳐다보기보다 배를 타고 직접 들어가 보는 것이 좋다. 어른 6천원, 아이들 4천원의 승선료를 내고 대대포구에서 출발하는 철새 탐조선을 타면 약 30분 정도의 운항시간동안 순천만의 물길을 따라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안내원의 기가 막힌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자연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개펄을 보금자리로 살아가는 생물들의 환경까지 잘 알게 되니 아이들의 자연공부에 이보다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갈대숲 사이로 단정하게 깔린 나무데크를 따라 약 1.3km를 걷다보면 이내 산길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이어진다.  바로 순천만 낙조의 최고 포인트인 와온마을 용산전망대로 이어지는 길이다. 등산로 입구에서 약 1km정도밖에 되지 않아 보통 걸음으로 20분이면 충분히 전망대에 다다를 수 있다. 용이 하늘로 승천하려는 순간 지나던 아낙이 ‘산이 날아오른다.’ 라고 말하자 용은 순식간에 산이 되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는 전설이 있는 용산은 번듯한 전망대까지 구색을 갖추어 아이들 손을 잡고 해넘이를 보기에 안성맞춤이다. 뉘엿뉘엿 해질 무렵 하늘빛이 붉은 색으로 물들고 때마침 바다도 썰물이 되면서 질퍽하고 끈적이는 생명의 땅 개펄은 금싸라기를 뿌려놓은 듯 반짝이며 그 모습을 드러낸다

물이 빠지면서 흔히 말하는 S자 형태의 물길이 나타나 해질녘의 황금노을과 어우러져 한껏 순천만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순천만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고 아기자기하다. 특히 갈대와 칠면초는 마치 정원을 가꾸어 놓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독특한데, 동그란 모양, 세모난 모양, 네모난 모양이 신기하고, 황금빛 갈대는 주변의 칠면초 덕분에 정원 분위기를 한껏 뽐내며 자랑스럽게 순천만을 묘사하고 있다. 한 여름엔 푸른 녹색이 순천만의 곳곳을 물들이고 가을이면 뽀얀 갈대꽃들이 만 전체를 물들이기 시작한다. 이때가 되면 개펄의 칠면초도 서서히 붉은 빛을 내며 갈대와 더불어 겨울옷으로 갈아입게 되는 것이다. 12월 말부터 몰려들기 시작해 이듬해 봄이 되면 모두 떠나버리는 철새들은 순천만 갈대숲 속에 둥지를 틀고 겨울을 나는데 그 종류와 수가 남도 제일이라 한다. 두 날개를 펴면 무려 2미터에 육박하는 흑두루미 가족이 해질녘 순천만을 유유히 비행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신선이 된듯한 기분이다.




순천만의 서쪽 해변에 자리 잡고 있는 화포.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장소임에 분명하지만 아직까지 많이 알려지지 않아 시골소년처럼 순박한 동네다. 특히 갯벌 체험장이 위치하고 있어 아이들의 생태 학습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인데, 봉화산을 중심으로 띠를 두르듯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화포 방파제가 있는 남쪽 끄트머리에 이르러 그 풍경이 절정에 이른다. 화포 해변에 물이 빠지면서 진한 회색의 개펄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동네 아낙들이 하나둘 씩 모여 기다란 널빤지의 ‘뻘배’를 타고 수로를 따라 삶의 터전인 개펄로 일을 나간다. 낮 동안 따뜻했던 봄바람은 해가 지면서 차가운 바닷바람으로 변해 뺨을 세차게 때리지만 화포해변의 일몰이 얻어맞아 얼얼한 뺨을 감싸주는 듯 포근하기만 하다






이왕 내친걸음 여수까지 가보기로 했다. 동쪽으로는 통영과 남해를 거쳐 여수까지 이어지는 한려해상 국립공원이 인접하고, 서쪽으로는 전남 홍도에서 완도를 거치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두 가지 해상공원이 한데 어울려 그 아름다움이 남도 최고로 알려져 있는 여수는 고속버스 요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서울에서 가장 멀기로 유명한 곳이다. 순천만의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17번 국도를 따라 달리니 오색불빛이 연신 번갈아가며 휘황찬란하게 두개의 교탑과 교각을 비추는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돌산대교를 지나 바로 정면의 산꼭대기에 위치한 돌산공원은 아름다운 돌산대교의 빛 잔치와 여수의 야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사진가들에게 이미 잘 알려진 곳. 밤바다의 바람이 차갑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다리의 불빛들을 보고 있노라면 추운 줄도 모른다.




대교를 건너 갓김치의 본고장 돌산읍으로 들어서 서쪽 해안도로를 달리면 평사부터 금봉을 거쳐 군내에 이르기까지 바닷물 속에 줄을 맞춰 박혀있는 나무들이 보인다. 바로 바다의 선물이자 완전식품인 굴을 양식하는 곳이다. 여수시에서 굴양식단지로 지정할 만큼 엄청난 양의 굴을 생산하는 곳으로 늦가을부터 이듬해 3월까지만 굴 수확을 할 수 있다고 하니 더 늦기 전에 싱싱한 석화구이를 실컷 먹어보기로 했다. 금봉리의 가장 아름다운 조망을 자랑하는 ‘해질녘 펜션’에 숙소를 정하고 주인장에게 주문한 석화구이. 단돈 만원에 네 명이 둘러앉아 갓 건져 올린 싱싱한 굴을 푸짐하게 구워먹고 또 굴죽까지 먹을 수 있다니. 푸근한 인심과 맛있는 먹거리는 언제나 여행을 즐겁게 한다.

지난 밤 굴요리를 너무 맛있게 잘 먹어서일까? 아니면 잠자리의 편안함일까? 이른 아침 무술목의 아침을 보기위해 서둘러 일어났지만 몸이 개운하고 힘이 넘쳐난다. 무술년에 이순신 장군이 이곳의 지형을 이용하여 바닷길인 줄 알고 밀려든 왜군을 대파하면서 유래된 지명은 흔히 무슬목 이라고도 불린다. 해양수산 박물관 뒤편으로 울창한 해송이 자리 잡고 있고 해변엔 작은 수박만한 몽돌이 깔려 있어 일출의 장소로도 널리 알려진 무술목 몽돌해변은 바로 길 건너에서 해넘이까지 볼 수 있어 가족 휴양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돌산읍사무소에서 해안을 따라 향일암까지 이어지는 도로 아래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옥색 바닷물은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인지 모를 만큼 맑고 깨끗해서 창 밖의 풍경에서 눈을 뗄 수 없다.








겨우내 붉은 꽃을 피우다 늦은 봄비가 내리면서 모두 져버리는 동백은 여수의 시 꽃이자 시 나무로 잘 가꾸어져 있고, 수량도 많아 여수를 여행하는 동안 눈이 즐거워진다. 빨간 꽃잎 속에 노란 수술이 보는 이들을 매료시키는 동백꽃은 3월 10일을 전후해서 펼쳐지는 ‘오동도 동백축제’때 절정에 이른다. 오동도는 찾는 관광객이 많아 서둘러 입장하지 않으면 들어가는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뤄 차안에서 시간을 다 보내기 일쑤다. 이럴 때는 오동도와 한려수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자산공원으로 발길을 옮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돌산읍과 여수시내의 중간에 위치한 경도는 다리가 놓여지지 않아 국동항에서 작은 카페리가 연신 이곳을 오간다. 어른 500원, 초등학생 100원을 받는 도선료는 비록 10분 정도의 짧은 배시간이긴 하지만 싸도 너무 싸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섬의 주민들을 위해 시에서 지원을 해 주는 모양이다. 경도는 하모회로 유명한 곳이다. 참장어로 알려진 하모는 회로도 먹지만 야채와 버섯 등을 넣고 끓인 뜨거운 육수에 적당한 크기로 썰어 칼집을 넣은 하모를 살짝 익혀 소스에 찍어 먹는 샤브샤브가 최고로 여겨진다. 다 먹은 후 쌀죽을 넣고 끓여 먹으면 맛도 맛이지만, 보양식으로 이만한 것이 없다고 하여 찾은 경도. 하지만 배에서 내려 식당들을 둘러보았지만 모두 문을 닫아 놓았다. 사연을 물어보니 하모는 6월부터 9월까지만 잡을 수 있고 나머지 기간엔 더 깊은 바다로 가 버리기 때문에 구경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참으로 아쉬운 순간이다. 참장어의 유혹 때문에 여름에 다시 여수를 찾아야겠다







푸른 새싹 피어나는 새봄. 따뜻한 봄바람 속에서 붉은 동백이 피어나는 여수여행을 가족들과 함께 계획해 봄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