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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박동철
사진/박동철, 이양원



충주를 지나 영월에 이르는 38번 국도를 타고 달리다 제천시 백운면에 이르면 천등산 과 사랑산 사이의 고개에서 박달재를 만나게 된다. ‘울고넘는 박달재’란 유행가로 잘 알려진 이곳은 애틋한 전설이 전해져 오는데, 조선조 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朴達)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도중 이곳을 지날 무렵 해가져 하룻밤을 묵고 갈 농가를 찾았다. 이 집에는 ‘금봉’이라는 아리따운 처자가 있었는데 두 사람은 그만 사랑에 빠지게 되고, 박달은 장원급제를 하여 돌아오기로 약속하고 길을 떠나지만 박달은 금봉을 너무 그리워한 나머지 공부를 게을리 하여 과거에 떨어지고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애타게 기다리던 금봉은 상사병에 걸려 한을 품은 채 그만 숨을 거둔다. 박달이 다시 찾았을 땐 이미 금봉의 장례가 다 치러진 후였고, 박달은 목을 놓고 통곡을 하며 금봉을 부른다. 울다 얼핏 고갯길을 쳐다본 박달은 금봉이 고갯마루를 향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벌떡 일어나 금봉의 뒤를 쫒아 고갯마루에서 와락 끌어안았으나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고 만다. 그 후 이 고개를 박달재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지금은 국도 확장공사에 맞추어 박달재터널이 개통되면서 제천-영월 간 교통은 한결 수월해졌지만, 그로인해 박달재 옛길은 그저 기억 속의 한켠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박달재에서 좌회전하여 백운면 소재지를 지나면 강원도로 접어든다. 원주시 신림면이다. 동이 틀 무렵 구력재를 넘으면서 발아래로 펼쳐지는 장관이 있으니 바로 계곡 사이로 연기인지 운해인지 자욱하게 깔리는 숯막의 풍경이다. 참나무를 태워 숯을 만들고 거기서 나오는 목초액을 받아 내는 곳이 숯막이지만, 숯을 만들 때 생기는 열로 찜질방도 체험할 수 있다고 하니 한겨울 뜨끈뜨끈한 황토숯가마에서 땀을 빼고 활력을 충전하는 것도 여행의 백미가 아닐까 생각된다. 잠시 차창을 내리니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친다. 흡입한 공기 속에 실린 참숯 향기가 내 몸 안으로 스며들어 어릴 적 시골 할머니 댁에서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해가 산을 넘어 하늘로 떠오르면서 햇살을 뿌리자 숯막 주변을 자욱하게 뒤덮고 있던 연기는 큰 키에 하늘위로 쭉쭉 뻗어난 낙엽송 그림자로 사방 갈라지며 환상적인 그림을 만들어낸다. 마치 클라이맥스에 이르기 직전 오케스트라의 잔잔한 연주 같은 느낌이다. 참새 떼들이 푸드득거리며 햇살 찬란한 연무 속으로 날아오른다. 숯막을 지나 뿌연 대기 속에 어렴풋이 역광으로 펼쳐지는 한적한 농촌의 겨울풍경은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물고둥’이라고도 불리는 다슬기는 각 지방별로 각기 다른 방언을 가지고 있다. 특히 제천과 영월 인근 지역에서는 올갱이, 올뱅이, 도슬비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맑고 깨끗한 물 덕분에 이 지역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타 지방에서는 골뱅이, 달팽이, 딸패, 고디라고도 불리며, 씹는 맛이 쫄깃하면서도 고소한 다슬기국밥은 숙취와 신경통에 특히 좋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지그재그를 그리며 산줄기와 강줄기가 서로 뒤엉켜 돌아나가는 영월은 청정수와 기암괴석들로 가득한 금수강산을 자랑하는 고장이다. 동쪽으로 태백산, 서쪽으로 충주호, 남쪽으로 소백산, 북쪽으로 가리왕산이 에워싸고 있어 그 빼어난 맵시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또한 영월은 수많은 역사들이 살아 숨 쉬는 고장이기도 한데, 김삿갓이라 불리는 김병연의 고장이자,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단종의 한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동쪽에선 정선으로부터 흘러드는 동강이 어라연계곡을 따라 스며들고, 서쪽에선 주천강과 평창강이 만나 서강이 되어 영월로 흘러들면 두 강줄기는 하나가 되면서 남한강을 이루며 본격적인 위세를 갖추고 한강으로 들게 된다. 그 강줄기들 마다 곳곳에 섶다리가 놓여있으니 영월을 찾는 관광객에게 이는 흥미로운 볼거리, 즐길거리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본래 섶다리는 잡목의 잔가지로 엮어서 만든 나무다리다. 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도끼와 끌로만 만든 이 다리는 주로 추수가 끝난 늦가을에 다리를 놓아 이듬해 장마가 들기 전까지 사용했지만 요즘은 관광객을 위해 연중 어느 때라도 볼 수 있도록 판운리를 비롯해 주천리, 선암마을 등에 만들어 놓았다. 얼핏 보기엔 허술하기 짝이 없는 다리지만, 실제 그 견고함을 알고 나면 선조들의 지혜로움에 무릎을 탁 치게 될 것이다. 엄마 아빠 뒤를 따라 졸졸 거리며 강을 건너는 호기심 많은 아이들의 눈에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무릉리와 도원리를 에돌아온 주천강은 서면에 이르러 평창강을 만나 기세 좋은 서강과 하나가 되는데, 이곳이 바로 옹정리이며 서강 풍경의 절경인 선암마을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흔히 서강은 물살이 잔잔하고, 부드러운 산세와 들판을 안고 돌아나가는 모습 때문에 여성적인 강에 비유하여 ‘암강’이라 부르기도 한다. 영월 책 박물관을 오른쪽에 끼고 우회전 하면 좁고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게 된다. 이내 포장도로가 끝나면서 흙먼지를 일으키는 도로를 5분여 내달리면 선암마을(한반도지형)이라 쓰인 푯말이 보인다. 이곳에 차를 두고 걸어서 산길을 약 10분 정도 오르면 전망대가 설치된 산등성이를 발견하게 된다. 소나무와 도토리나무들로 가득한 산길을 헤치고 나서 발견하는 그 곳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놀라움과 호기심 때문에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든다. 태안반도는 물론 호미곶까지도 똑같이 생긴 한반도 지형의 능선에는 한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큰 석회암 구멍바위가 있는데, 마을 전설에 따르면 이 바위 때문에 동네처녀가 바람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여름에서 초가을까지는 전망대 앞쪽으로 무궁화가 가득피어 그 형세와 잘 어울리는 풍광을 연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등산로 입구의 간이매점을 제외하면 딱히 편의시설이 없는 것이 무척 아쉽다. 한여름이면 한반도지형 위쪽으로 지는 해넘이의 장관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한 이곳에 전망대뿐만 아니라 느긋하게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단종이 영월로 유배당하면서 고개를 넘을 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고 해서 불리는 소나기재 정상은 선돌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선암마을을 휘돌아 오노산의 허리를 쓰다듬으며 여러 굽이 돌아나간 서강은 선돌에 이르게 되는데 여름철 일몰이 아름다운 선암마을과 반대로 선돌의 일몰은 남서쪽으로 해가지는 겨울이 특히 아름답다. 평탄한 오솔길을 걸어 들어가면 갑자기 탁 트인 전망의 선돌 전망대를 만나게 된다. 오금이 저릴 만큼 까마득한 낭떠러지 너머로 ‘선돌’은 강물을 뚫고 올라온 커다란 바위가 도끼를 맞고 둘로 쪼개진 듯한 형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바위 안에 자갈이 들어 있는 역암이라 침식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 하지만 자연의 힘으로 빚어낸 선돌의 크기와 위용은 실로 엄청나다.









소나기재를 지나면 바로 장릉이다.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 당하고 영월로 유배 왔다가 결국 사약을 받고 숨을 거둔 한 많은 단종을 모신 묘다. 단종의 억울한 넋이 깃들어 있는 영월엔 장릉 외에도 소나기재를 비롯해 군등치, 배일치 등의 단종과 관련된 고개 이름들과 읍내의 자규루, 금몽암, 영모전, 관풍헌, 그리고 청령포 등의 유적지가 즐비하다.

단종이 영월로 내몰린 뒤 처음 머물던 청령포는 한쪽만 빼고 삼면이 모두 깊은 강물이 가로막고 있는 강변이다. 지금은 황포 돛을 단 동력선이 오가고 있는데 강을 건너면 울창한 솔숲이 반긴다. 숲속에는 단종이 머물던 어가를 비롯하여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를 적은 금표비, 단종이 서낭당을 만들 듯이 쌓았다는 돌탑 등이 남아있다. 솔숲에서 눈길을 끄는 나무는 천연기념물(제349호)로 지정된 관음송. 단종의 유배 생활을 지켜보았고, 단종의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소나무로 알려져 있다. 이른 아침, 솔향 가득한 청령포를 걷노라면 어린 단종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듯하다.







검룡소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정선 아우라지에서 송천, 오대천이 만나 동강이 된다. 그렇게 영월로 쉼 없이 달려온 동강은 어라연 계곡을 거치면서 봉래산 옆을 스치듯 지나간다. 서강에 비해 물살도 급하고 각종 기암괴석들이 강 주변으로 솟아올라 그 기세가 거칠고 남자답다 하여 ‘숫강’이라고도 불리는 동강은 한국 래프팅의 일번지로 손꼽힐 만큼 비경으로 가득 찬 코스이기도 하다.
박중훈과 안성기가 주연을 한 영화 ‘라디오스타’의 주 무대가 되었던 영월.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다면 단연 봉래산이다. 영화 속 무명 락밴드와 특집 라디오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이곳 봉래산 정상은 낮에는 패러글라이딩이나 행글라이딩을 위한 활공장이자, 밤에는 아름다운 밤하늘의 별을 보며 추억을 담을 수 있는 별마로 천문대가 위치한 곳으로 영월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별(star) + 마루(정상)+ 로(고요할 로)의 합성어로 별을 보는 고요한 정상이라는 뜻의 별마로 천문대는 민간천문대로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865m)에 위치해 있는데 5명 이상 단체라면 천체 관측을 위한 숙박도 가능하다.









천문대에서 천체망원경을 통해 안드로메다 성운을 보며 두 주인공이 나누던 대화가 생각난다. “별은...자기혼자 빛나는 별은 거의 없어.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우리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인류 발전의 상징인 문명이 공생하며 서로가 빛나게 해주는 일이야 말로 가장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 처리™/박동철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10-20 1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