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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자료는 SK 사외보 '디카를 들고 떠나는 여행' 07년 10월에 소개된 자료로, 무단 복제 및 재배포시 저작권법에 의해 불이익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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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면 가을 단풍이 절정에 달하기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알록달록 곱게 물든 단풍구경을 떠난다. 하지만 붉고 노랗게 물들어 화려함을 자랑하는 단풍과 달리 은은하면서도 깊은 매력을 뿜어내며, 군락을 이루며 온 산을 뒤덮는 억새의 진풍경은 이 가을에 느껴보아야 할 아름다움 중에도 빼 놓아서는 안될 부분이기도 하다. 국내에 꽤나 이름 난 억새산들을 다 둘러보았지만, 창녕의 화왕산만큼 내 마음을 끄는 곳도 드물다. 경부고속도로 금호JC를 지나 서대구에서 마산까지 이어지는 구마고속도로 접어들어 화원 톨게이트를 지나면 차량의 숫자는 급격하게 줄어든다. 현풍을 지나면 이내 대구 땅을 벗어나 경상남도 창녕 땅으로 접어들게 된다. 차창 밖으로 철쭉으로 유명한 비슬산의 우람한 산세가 스치듯 지나면 이제는 산보다 들판의 모습이 더 많이 보이기시작하니 마음이 잔잔해지고 평화로워지는 느낌이다. 황금색 물결이 출렁이는 들판은 마치 곱게 빗어놓은 금발머리처럼 바람에 살랑이며 남실거리고 가을의 깊숙한 곳에 이미 내가 자리 잡고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안동서부터 시작된 낙동강의 물줄기는 대구, 이곳 창녕을 지나 삼랑진에서 밀양강과 합쳐져 남해로 스며드는 동안 일대의 논과 밭에 풍부한 물을 공급해 준다. 이런 평야지대에 위치해서 그런지 높이가 고작 756m인 화왕산의 기세는 다른 고산보다도 더 높고 장엄해 보이기까지 한다.





창녕의 진산인 화왕산은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싼 산으로, 화왕산에서 관룡산으로 이어지는 화왕산군립공원에 속한다. 그 이름에서도 느껴지듯 옛날 화산활동이 활발했던 산이다. 그래서 불뫼, 또는 큰불뫼로 불리기도 하였는데, 지금은 작은 연못이 되어버린 분화구의 모습이 이를 증명해보이고 있다. 봄철이면 진달래와 철쭉이 산 정상 곳곳을 물들이는 화왕산의 진짜 매력은 9월 중순부터 11월 초까지 펼쳐진다. 바로 산 정상에 흐드러지게 피어 감동의 물결로 출렁이는 참억새의 아름다움이 그것. 화왕산(火旺山)의 원래 명칭은 ‘火王山’이다. ‘王‘’자가 旺’자로 바뀌어 버린 이유에 대해선 몇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일제 때 우리나라 지명에 그들의 제국주의 사상을 심어 넣기 위해 ‘日’자를 붙였다는 이야기도 있고, 홍수 피해가 많은 이 지역에서 불의 기운을 얻기 위해 ‘旺’자를 사용했다고도 한다. 아무튼, 나는 산행의 시작을 화왕산의 서쪽 끄트머리 자하곡에서부터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창녕여고 뒤쪽의 자하곡 매표소에 차를 세우고 산 입구의 식당과 가게를 지나니 개울 건너로 도성암이 보인다. 도성암 아래로 목마산성이 자리 잡고 있는데, 임진왜란 때 왜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여졌다고도 하고, 말을 기르던 곳이었다고도 하는데, 그 유래는 분명치 않다. 도성암을 뒤로하고 계속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가다 화왕산장을 만나면서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든다. 울창한 소나무 숲을 지나면 운동기구들과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정자가 세워진 산림욕장에 닿는다.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길을 재촉해본다. 산림욕장에서 오른쪽 전망대 방향으로 가면 배바위를 통해서 정상으로 닿게 되는데, 암벽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조망이 좋고 화왕산의 매력을 한껏 들이킬 수 있는 곳이지만, 산을 잘 타는 사람이 아니라면 택하지 않는 것이 좋다. 산길은 이제 확연히 그 폭이 줄어들어 본격적인 등산코스로 접어들게 됨을 알린다. 30-40여분이 지났을까 숲길을 벗어나며 돌과 바위들의 모습이 더 많아지더니 등산길은 급경사면을 이룬다. 여기가 그 ‘환장고개’라고 불리는 곳인가 보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이 고개는 숨이 환장할 정도로 가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다보면 정말로 가슴이 터질듯 숨이 차온다. 산을 오르면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의 오르막 길. 그 길이 너무 너무 힘이 들 때 메고 있던 배낭을 잠시 내려놓고, 산 아래를 보는 여유를 가져보라. 내가 올라온 길을 보는 순간 나에 대한 대견함이 느껴질 테니. 살아가는 것 또한 같지 않을까?









30여분을 낑낑대며 오르던 환장고개는 돌계단 위로 뻥 뚫린 하늘이 보이며 그 마지막을 알려준다. 산 위에서 아래를 향해 불어내리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발걸음도 가볍게 화왕산성 서문에 들어서면, 새로운 신천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한 시간을 넘게 올라온 산길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10리 억새밭의 장관은 팔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동적이다.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억새꽃의 하얀 솜털은 6만여평의 화왕산 정상 일대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에 흔들리며 가을의 왈츠를 들려주듯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비처럼 흘러내리던 땀이 식어 오히려 한기를 느끼게 될 때 쯤, 그렇게 억새의 리듬에 취해있던 멍한 정신을 다시 가다듬어본다. 왼쪽으로 화왕산 정상이 손에 잡힐듯 보이고, 오른쪽 억새 숲길 끝에 커다란 바위 봉우리가 보인다. 바위 위에 배를 매어두는 고리가 있었다는 전설을 가진 배바위다. 화왕산에는 9泉 , 3池라고 불리는 샘이 있는데, 여기서 배바위 쪽으로 조금만 가다보면 그 중 하나인 맑은 샘이 있다. 물론 식수로 사용하는 물이며, 그 맛 또한 기가 막히다. 천예의 요새인 기암절벽을 이용하여 조성한 화왕산성은 임진왜란 때 곽재우장군과 의병들의 활동무대였던 호국영산이기도 하다. 잡목이 없이 평원 빼곡히 참억새가 자라고 있는데, 매년 10월 어김없이 열리는 억새제와 3년마다 윤년 초봄에는 억새 태우기 행사로 가을철 주말이면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더구나 등산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요즘이라면 축제기간 동안 산에서의 교통체증도 염려스럽기까지 하다.












서걱거리며 내 몸과 부딪히는 억새 틈 사이로 10분 정도를 오르면 해발 756미터의 화왕산 정상에 닿는다. 동쪽, 화왕평전 너머 멀리 밀양과 영남알프스의 멋진 산맥들이 첩첩이 산그리매를 만들어내는 반면, 급경사면을 이루는 서쪽 아래로 창녕시내가 손에 잡힐듯 내려다보이고, 동쪽에 비해 산이 없고 평야지대를 이루는 이유로 더없이 넓고 시원스러워 보인다. 자세히 보면 우포도 바라보이는데, 사실 우포는 창녕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자연사 박물관이기도 하다. 무려 1억 4천만 년 전 한반도가 태어나면서부터 함께 시작한 그 역사에 걸맞게 세계습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우포는, 수백 종에 달하는 천연기념물의 동.식물이 터를 잡고 살아가는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하다. 흔히 우포를 자그마한 저수지쯤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우포를 걸어서 한 바퀴 둘러보려면 하루 종일 돌아 다녀도 부족할 만큼 넓고, 광활하다. 사계절 그 모습이 빼어나지 않은 때가 없으니 늘 사진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기도 한다. 이곳 창녕까지 왔다면, 우포, 목포, 사지포, 쪽지벌의 네 개 구역의 늪을 통 털어 부르는 우포늪을 한번쯤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다른 곳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이국적인 풍경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









화왕산성의 복원공사를 통해 그 옛날 웅장했던 산성의 모습은 제 틀을 갖추게 되었는데, 그 둘레만도 2.5km가 넘는다. 지금은 ‘삼지(三池)’ 또는 ‘용지(龍池)’라 불리는 세 개의 화산 분화구 자리에서 임진왜란 당시의 여러 가지 문화유적들이 발굴되고 있어 역사적으로도 그 값어치를 인정받고 있다. 용지를 지나 동문을 나서면 관룡산으로 이르는 길이다. 관룡산 정상에서 병풍바위, 관룡사를 지나 화왕산 군립공원 옥천 매표소까지 이어지는 이 등산로는 임도가 대부분이고, 완만한 능선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때문에 아이를 동반한 가족 산행에도 제격이다. 동문에서 관룡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중간엔 ‘허준’ ‘대장금’ ‘왕초’ ‘상도’ ‘영웅시대’ ‘주몽’ 등 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도 있으니, 산행이 흥미로울 것이다.







성인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화왕산의 억새는 이른 새벽녘과 해질 무렵이 더 아름답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산정 평원에 자욱하게 깔린 안개는 하얀 호수를 연상케 하고, 해 뜰 무렵 화왕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가히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멀리 가지산에서 신불산까지 이어지는 영남알프스 골 사이사이 자옥한 안개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을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화왕산을 사랑하지 않고는 못 베길 것이다. 또 해질 무렵은 어떤가. 낙동강 굽이굽이 흐르는 들판 멀리 태고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생태계의 보고, 우포 너머로 뉘엿뉘엿 해가지면, 한낮 뜨거운 태양 아래서 은빛 파도를 만들어 내던 억새는 황금빛 노을을 받아 횃불을 연상시키듯 붉게붉게 흔들린다.








10월 20일, 토요일 오후 이곳 화왕산 정상에서는 국내최대의 산악인 야간축제가 벌어진다. 전국 각지에서 1만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산신제와 의병추모제를 비롯, 통일기원 횃불행진이 펼쳐져 750 고지의 가을밤을 수놓으며 일대 장관을 이루게 되는데, 수많은 사진가들이 이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한다. 또 내년 정월 대보름은 3년마다 개최되는 억새태우기 행가가 열리는 해이기도 하니, 대 장관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가을 화왕산의 정기를 듬뿍 받아 생활의 활력과 에너지를 채워보자.




* 처리™/박동철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10-20 17:57)